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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언젠가 소박한 내 집을 짓겠다는 당찬 꿈이 있습니다. 설계는 되도록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서재와 창고를 꼭 넣고 부엌과 거실은 넓게 쓰고... 이런 추상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내가 거쳐온 집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건축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터라 춥고 더운 집이라니 뭔가 독특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한 듯한 책의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공선옥 작가는 어려서부터 지나온 집들을 생각하면서 짜증도 나고 추위와 더위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작은 창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동하기도 하는 그런 기억들을 꺼내 보여줍니다. 이런저런 집과 방을 거치며 살다가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정착한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지만 살아가는 이야기와 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신비한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려서나 커서나 흥미롭습니다. 은퇴라는 개념과 신비한 힘의 관계는 전혀 묶어서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데 두 단어를 묶어서 만든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작가는 박서련, 을 엄청 놀라면서 웃으면서 본 기억이 있어서 익숙한 이름에 깜짝 놀라웠습니다. 이 작가는 역사적인 사실을 골자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들을 낼 것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어서 괜스레 더 놀랐습니다. 이런 이상한 고정관념이라니... 강주룡에 이어 작가의 책 중 두 번째로 읽은 소설이 마법소녀여서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뭔가 틀에 박힌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설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삶을 마감하려고 생각하는 스물아홉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소녀라고 하기에..

피프티 피플

50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사람 이름이 가득한 목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목차만 봐서는 내용이 산만하지는 않을지, 기억력이 만족스럽지 않은 내가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아무튼 책을 펼쳐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끝나지 않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반쯤 읽어가다가 보니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의외의 인연이 사람들을 이어주었고 그 의외성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들 사는 이야기, 울고 웃고 두근거리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매력적일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글에서 쉽지 않은 창작과정이었다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화와 인터뷰에서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역시 정세랑 작가는..

파친코

드디어 화재의 소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고,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으며 드라마에 등장한 배우들도 한동안 끊임없이 다루어져서 무척이나 궁금했던 소설입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의 첫 문장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선자의 인생을 따라가며 역사적인 사건과 그 속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시대적, 사회적 한계를 통과해나가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은 작가가 30여 년에 걸쳐 조사하고 인터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언론이 주목했던 인물들의 인터뷰와 글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과학자들이 쓴 책을 좋아합니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과 실험의 설계가 합리적이며, 결론도 깔끔하게 나오는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 화제가 되었던 를 읽었습니다. 제목이나 표지만 봐서는 과학분야의 책으로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내용은 생각했던 대로 읽기 좋게 되어있었습니다. 다만 뇌와 호르몬의 작용 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생소한 용어 탓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했습니다.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야생에서 가축화된 동물들의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제목이자 이 책의 결론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내용을 도출합니다. 개가 늑대의 후손에서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생존에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보노보라는 생소..

시선으로부터,

앞 페이지에 가계도가 있는 책은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애정 하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에 떡하니 가계도가 그려진 것을 발견하고 고민하다가 읽게 되었습니다. 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고 3대로 끝내준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소설 내용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라는 제목에서 시선은 가족들에게 크든 작든 일생을 통해 영향을 준 '심시선'의 이름이면서 심시선이 삶을 통과하며 겪어야 했던 타인들로부터의 시선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작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심시선과 가족들이 겪은 사건들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풀어냅니다. 시선이 인터뷰하거나 글로 쓴 내용들을 연결고리로 현재 가족들의 모습을 엮어냅니다. 10주기를 맞이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선의 제사를 지내기로 합심한 특별한 가..

재인, 재욱, 재훈

어렸을 때 바닥에서 30cm 높이로만 날아다닐 수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를 보았습니다. 별것 아닌 능력이라고 구박받고 놀림받는 주인공이었지만 너무 부러웠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것 자체로 너무 특별하니까요. 미국에서 만든 히어로물의 영웅들은 엄청난 능력으로 저기 멀리 있는 느낌이라면,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지고 일상을 함께하는 주인공은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멀리 있는 컵을 움직여보려는 시도를 해본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 소설에서는 초능력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지구까지는 아니지만 주변을 구하는 일상의 히어로가 등장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3남매가 가진 엉뚱하고 소소한 초능력은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위험에 ..

다섯 번째 감각

일상에 이런저런 상상을 보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이번에 을 우연히 빌려서 읽고 놀라운 이야기를 써낸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파도와 고양이와 사람이 어색하지만 묘하게 재미있는 표지라는 생각에 우연히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 만에 후다닥 다 읽어버렸습니다. 스스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김보영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척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감각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따라가다 보면 또 새로운 상상의 결과를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