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들이 쓴 책을 좋아합니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과 실험의 설계가 합리적이며, 결론도 깔끔하게 나오는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 화제가 되었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었습니다.
제목이나 표지만 봐서는 과학분야의 책으로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내용은 생각했던 대로 읽기 좋게 되어있었습니다.
다만 뇌와 호르몬의 작용 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생소한 용어 탓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했습니다.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야생에서 가축화된 동물들의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제목이자 이 책의 결론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내용을 도출합니다. 개가 늑대의 후손에서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생존에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보노보라는 생소한 동물의 습성은 뭔가 순진한 아이들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느끼는 재미와 흥미로움에 비해 읽어내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용어가 한몫을 한 것 같고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은 욕심이 또 한몫을 했습니다.
다정함이 인간의 전유물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저자들이 개와 보노보, 여우 등의 동물을 살펴본 것처럼 동물을 살펴보지 않아서 생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도 보노보처럼 아니 보노보보다 더 다정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책에 쓰인 대로 다른 인종을, 다른 나라나 공동체를 적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는 태도가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전쟁, 차별과 증오, 갈등과 반목은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 종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정치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교육이 아주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도 반복되는 전쟁과 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독서였습니다.
서로 만나고 어울려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이 책은 특히 정치인들이 반드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책에서 고른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며 마칩니다.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 준다. 또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 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왔다.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 -30p
타자에게 친절한 우리 종의 특성은 보노보와 일치하지만, 사람의 경우 이 친절함은 특정 타인에게만 해당된다. 우리는 집단 정체성을 토대로 타인을 판단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사랑이 정체성이 다른 타인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공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187p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외부자가 그 집회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은 집회의 '평화로운' 부분임을 기억하자. 평화로운 노력만이 내구력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275p
우리가 사는 사회의 건축물이 관용을 베풀 때 그 안의 개인들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려움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고 무례하지 않게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자신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283p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 3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