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매개체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인공적인 더스트로 인해 파괴된 환경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던 아마라와 나오미가 프림 빌리지라는 도피처를 찾고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과거의 이야기와 더스트생태연구센터의 아영이 유해 잡초로 여겨지는 모스바나를 조사하게 되는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 식물에 얽힌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이야기는 자가증식하는 더스트로 인해 식량과 자원의 확보가 어려워진 세상에서 더스트에 저항성을 가진 사람들과 인공적인 돔과 방호복 속에서만 더스트를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이기적이고 잔혹한 인간의 속성을 그려냅니다. 더스트 저항종인 아마라와 나오미는 인류를 위한 실험이라는 명분아래 비 인간적인 실험을 당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시설을 탈출하고 괴담처럼 전해지는 프림 빌리지를 찾아나섭니다.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사냥꾼과 더스트의 위협 속에서 가까스로 프림 빌리지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의 공동체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온갖 식물을 연구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경작 가능한 작물과 더스트 분해제를 공급하는 온실 속의 레이첼과 공동체의 리더격인 지수를 중심으로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지만, 증가하는 더스트와 외부인의 침입,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공동체가 와해되고 구성원들은 각자의 살길을 찾아 흩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이야기는 더스트생태학을 연구하는 아영이 이상 번식하는 잡초 모스바나를 조사하면서 인공적인 개입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하면서 전개됩니다. 모스바나를 분석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아마라와 나오미를 만나 잊혀졌던 프림 빌리지와 모스바나에 얽힌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어린시절 잠시 살았던 동네에서 경험했던 신비한 사건과 괴팍한 이웃 희수에 대한 기억이 모스바나의 비밀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고, 지구 전역에서 자연 번식으로 특성이 많이 변한 모스바나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모스바나는 주변의 작물을 해치는 잡초이기 이전에 더스트 시대를 종식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식물로 재평가 받게 됩니다. 식물 학자들의 분석과 아마라와 나오미의 증언, 희수의 기록을 통해서 프림 빌리지와 모스바나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고, 과거 모스바나를 만들어낸 현재의 레이첼을 아영이 만나 희수에 대한 기억을 전하면서 지수와 레이첼, 아영과 희수의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사막의 모래 폭풍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붉은 모래바람이 태양을 가리고 거대한 파도처럼 멀리서부터 풍경과 건물들을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모습을 처음 봤을때는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잠깐이라도 그 모래바람 속에 있었다면 머리카락 사이사이, 눈, 코, 입 할것 없이 먼지가 들어가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외부에 노출된 피부에는 모래먼지의 흔적이 털어도 털어도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통해서나 보던 장면을 오감을 통해 직접 경험해본다는 것은 상상 밖의 놀라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더스트로 인한 환경 파괴와 그 속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소설을 읽어서 더 공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고나서 환경파괴와 온난화로 인해 재앙과 같은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목소리들을 떠올렸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 수시로 발생하고 작물의 경작마저 어려워지는 소설과도 같은 상황이 인류에게 닥친다면 분쟁과 대립을 넘어 환경을 되살리고 공존하는 방향의 행동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이상 기후가 초래한 사막화와 태풍, 폭우, 폭설 등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기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은 아닌지, 환경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너무 멀리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김초엽이 이야기한 것처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과 그런 마음이 있음을 믿습니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할머니는 타운의 어른들이 위선자라고 말했지만, 어른들만 그런건 아니에요. 아이들도 다 조금씩 비겁하거든요. ... 그래서 전 사람은 누구나,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위치에 따라 좋은 사람인 척할 뿐이라고요.
<지구 끝의 온실>은 드라마 제작기업인 스튜디오드래곤과 영상화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있으니 조만간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김초엽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오래오래 좋은 소설과 글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탐구영역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획이 실패가 되지 않게 (0) | 2022.04.25 |
---|---|
아처(The Archer) (0) | 2022.04.18 |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0) | 2022.04.10 |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0) | 2022.03.29 |
라틴어 수업 (0) | 2022.03.28 |